박채순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민주당 서울 상무위원 

2012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승리를 위한 전제로 연대연합 또는 통합 논의가 무성하다. 강력한 한나라당과의 양대 선거 경쟁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승리는 1:1의 구도에서만 가능할 것이 때문이다. 그래서 각종 진보 매스컴에서 여론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도 이러한 구도를 조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까지 주로 논의되는 진보진영의 연대연합과 통합의 방안들로는 진보개혁 진영이 모두 하나로 통합하여 단일정당을 만들자는 ‘통합’ 방안, 민주당을 제외하고 진보정당들만으로 통합진보정당을 만든 후에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자는 ‘연합’ 방안이 있다. 이것들은 공히 기존의 정치세력을 이러 저리 재편하려는 소위 ‘세력 중심의 정치재편 논의’이다. 

모든 진보개혁 정치세력들이 이에 적극 호응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현실 정치가 진보개혁 진영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정치는 생물이다”라고 하셨듯이 앞일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가 무쌍하다. 민주진보 진영의 제 정당들이 함께 협조하자는 데 이론은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각자의 처한 위치가 달라 많은 걸림돌이 존재한다.

 지난 3월 27일 진보신당의 정기 당 대회에서 독자파가 승리하였다. 헤어졌던 두 진보정당의 재결합에 일단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진보신당의 진보통합 결의를 기대하였던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은 난처해졌다. 설사 헤어졌던 두 진보정당이 통합을 이루고, 여기에 일부 정치세력이 더해진다 하더라도 그 통합진보정당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정당의 존립 근거가 궁극적으로 정권을 취득하는 데 있는데, 야권의 대선 후보로서 줄곧 지지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대중조직을 기반으로 민주당과의 최종적인 후보 단일화 경쟁에서 승리하여 본인의 이름으로 정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단기필마인 그의 의도를 다른 정파가 간파하지 못할 리가 없다. 더구나 유시민의 끝임 없는 변신의 이력과 신자유주의와 한미FTA를 대하는 그들의 정책은 진보진영에 신뢰를 주지 못한 게 사실이다. 민주당에서 떨어진 나간 국민참여당, 민노당과 헤어진 진보신당 등이 각각 원대 복귀해야 실마리가 풀리는 작업은 아예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국민의 명령 백만 민란’이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약진하고 있으나, 이 소중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야 5당이 하나의 정당으로 대통합을 이룰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진보정당들과 국민참여당이 민주당과는 절대로 통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압박으로 야당 정치세력의 재편을 이루겠다는 애초의 기획은 달성되기 어려운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 김영삼 대통령의 호남을 포위한 야합적인 3당 합당, 지역의 맹주였던 호남의 고 김대중 대통령과 충청의 김종필 당시 총재와의 지역주의에 근거한 연합정부는 각각 선거 승리를 위한 방안으로 가치연합이나 유권자의 의사와는 무관했던 선거공학적인 정치세력 재편의 방법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지역주의에 의지했던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갖는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주의나 선거공학에 의한 야합은 더 이상 가능하지가 않다. 민주당은 현재의 국가적인 난제들과 민생 불안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하는 바, 성공가능성이 낮거나 효과가 미미할 정치공학적인 세력 간 연대연합에 좌고우면하며 보낼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국가의 정당들은 각각 그들의 이념과 정책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갖는 것이 정당하고 건강한 것이다. 이런 내용을 무시한 인위적인 정치공학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민주당은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이념과 가치를 올바로 세우고 국민 속에서 처절하게 부딪치면서 유권자의 마음을 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짧은 기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국민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빈부격차가 엄청나고, 무한경쟁의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겨우 버티고 있는 국민이 부지기수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교육비를 떠안는 부모, 온갖 노력을 해서 대학을 졸업해도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청년세대, 천정부지의 주택과 전세 가격으로 유랑민이 된 가정들, 보육비와 사교육비 때문에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 일할 건강과 조건이 충분한 데도 사회에서 내몰림을 당하는 중년의 가장들, 노인자살률 세계 최고의 암담한 사회가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어 세계 경제 대국에 마크된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국민은 이러한 난관을 타개해 줄 보편주의 복지국가와 이를 추진할 정치세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 권리인 보편적 복지와 이를 포함하는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우리 국민의 뜻이요 시대정신이다. 조선일보 조사에서도 77.4%의 응답자가 “복지가 내년 선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답했다. 우리나라 경제사회의 격차와 양극화가 지나치게 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이를 제대로 추진할 정치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고 당연한 일이다. 민주당이 이러한 정책노선과 집권의 청사진을 제 정당과 시민사회에 내 놓으면서 이에 동의하는 정당, 시민사회단체, 국민을 상대로 ‘복지국가 단일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진보개혁 진영 대통합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담당할 충분한 책임과 능력을 갖춘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중심으로 내년 선거에서 스스로의 지지의사 표출을 통해 사실상의 단일화를 이루어낼 것이 확실하다. 현재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연대연합과 통합에 대한 제 단체들의 노력은 이론과 주장이 난무하긴 하지만,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의 철학과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주장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만을 위한 정치공학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집단의 이익만을 위하고 국가담론과 콘텐츠가 없는 수사뿐인 ‘세력 중심의 정치 재편’과 정치 공학적 연대연합 방안은 유권자인 국민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그래서 민주당이 하루 빨리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가치를 전면에 내걸고 가치 중심의 정치 재편 방안인 ‘복지국가 단일정당’의 큰 길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에 동의하는 제 정당과 사회단체들과 함께 가야 할 것이다. 과거, 정치적 민주화의 쟁취를 위해 시민사회와 함께 앞장섰던 민주당이 이제는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부름에 직면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 시대적 사명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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